수선화의 변명
수선화의 변명
전에 지인의 얄팍한 변심으로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도저히 그녀석이 그럴 놈이 아닌데..."
곱씹을수록 화증은 더 깊어졌다.
차라리 모르는 사이였다면 덜 다쳤을 것이다.
사례가 겹칠수록 대인기피증도 더해갔다.
더구나 얄팍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가증스런 모습을 대하면서도
내색조차 안하고 미소를 지어야만 하는 자신이
이중인격인 듯싶어 자괴감마저 들었었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대하는 사람 모두를 아이로 보기로 했다.
아이들의 본능을 이기심이라 표현하지 않듯이
그저 자연스런 모습으로 여기면 편했다.
배고프면 울고 가지려고 떼를 쓰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아이들다운 모습일 것이다.
본능에 충실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가증스럽다기보다는 가상하게 보이면서
마치 젖무덤을 파고드는 아이를 바라보는 듯
친밀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대인기피증도 사라졌다.
어찌 보면 이솝이야기의 여우처럼
애초에 따지 못할 포도를 시어서 포기하는 양
편하게 치부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래 그것은 배려나 이해를 가장한
고도로 위장된 나의 이기심일 수도 있다.
더 이상 다치지 않으려는 얄팍함...
그들에게 분노로 대하지 않고
너그러움으로 처신하려는 내 자신이
그들보다 더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을
필연과 숙명이라 여기며
이렇게 변명하면서 구차하게 살고 있다.
언젠가 꽃말 이야기에서
내 탄생화가 수선화임을 알았다.
자신의 미모에 반해 연못에 빠져 죽은 요정이
꽃으로 화했다는 수선화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수선화를 닮고 있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그런 나에게
숙명 같은 연민과 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다.
글 : 쉬리 변재구
사진:한계 이원수
배경 곡: Seven Daffodils(일곱 송이 수선화) /BrothersF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