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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그 일격의 미학(조영남/가수,화가)

한계(閑溪) 2012. 1. 10. 16:46

 

추상미술, 그 일격의 미학(조영남/가수,화가)

 

 

바야흐로 한방과 일격(一擊)의 시대다. 얼핏 듣기엔 건달깡패가 쓰는 막말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매사가 한방으로 끝난다.

세계에서 몇 째 가는 높이를 자랑하는 뉴욕의 쌍둥이 빌딩(세계무역센터)도 단 한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딱 한 방의 뇌성벽력과 같은 테러로 오사마 빈 라덴인가 뭔가 하는 친구가

일약 유명 수퍼스타이자 희대의 살인마로 떠올랐다.

인간사 모든 것에 한방의 문화가 판을 치고, 모두가 한방을 갈구한다.

공을 잘 던지는 일, 딱 그거 한방으로 박찬호도 수백억을 벌어들인다.

그토록 도도해 보였던 인류문명조차 그 한방, 그 일격 앞에서는 즉시 무기력해진다.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미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술에도 바야흐로 한방의 시대가 도래했다. 추상미술이 그렇다는 얘기다. 천천히 얘기해 보자.

 

 

 

 

 

 

 

 

 

 

 

 

 

 

이번 달에 월미 양과 나는 여의도 근처를 어슬렁거리기로 했다.

 원래 여의도는 거의 버려진 모래섬이었는데 그 황량한 모래섬이 신도시 개발이라는 단 한방의 국가정책으로

일약 대한민국의 심장으로 둔갑했다.

한 나라의 국회의사당이 들어와 있고 3개 공중파 방송사가 모조리 들어와 있으니 심장부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그 심장부에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미술품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쫀쫀하게 있다.

 새로 지은 한국산업은행에는 정보원의 〈기관차 2000〉, 63빌딩에 리폴드(Lichard Lippold)의 〈한국의 정신〉,

 한국투자신탁에는 이불·김구한·정기용·이정근의 공동작품인 〈상생〉, 성완경의 〈백야홍〉,

장은증권빌딩에는 최병상의 〈해와 달과 별〉 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월미 양과 나는 두 개의 작품으로 선택권을 좁혔다.

 63빌딩 앞의 〈한국의 정신〉과 일신방직 앞에 있는 마우로 스타치올리(Mauro Staccioli, 1937∼)의

 거대한 조형물 〈일신여의도 ’91〉이 그것이다.

 

 

 

 

 

 

 

 

 

 

 

그들은 둘 다 추상이다.

조형적으로는 63빌딩 것이 좀 복잡하고 일신방직 것은 극히 단순하지만 결국

그 조형물들은 특정 물건을 연상시키거나 닮지 않았기 때문에 둘 다 추상인 셈이다.

63빌딩 쪽은 미국제, 일신방직 쪽은 이탈리아 제품이다.

월미 양과 나는 어느 쪽 제품을 먼저 구경하느냐로 의견을 나누던 중 내가 먼저 스타치올리 쪽으로 기울었다.

 왜냐하면

우리 일행이 마침 스타치올리의 조형물 앞에 섰을 때 월미 양이 아주 낮은 톤으로 이렇게 물어 왔기 때문이다.

“저런 작품은 어떤 식으로 봐야죠?” 이건 극히 평범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사랑스런 질문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생각해 볼 질문이었다.

그 순간 우리 사이에 잠시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얼핏 듣기에 월미 양이 나를 한번 테스트해 보거나 지레짐작 비아냥대는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긴 비아냥댈 만도 했다.

내가 그간 월미 양과 함께 다니며 미술에 대해서 좀 아는 체했던가.

《월간미술》에다 대고 좀 떠벌렸는가 말이다.

 그러니 월미 양은 정녕 까탈스런 질문을 내 앞에 맘 푹 놓고 던진 것이고,

나는 스타일을 구기지 않기 위해서 적절한 대답을 내놓아야만 했다.

도대체 추상 작품을 놓고 설명해 보라는 요구처럼 황당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한번쯤은 사진을 통해서 봤겠지만 스타치올리의 작품은 엄청나게 단순하다.

 그냥 휘어진 칼 하나가 벌렁 누워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스타치올리의 작품을 어떻게 봐야 하냐고 물은 것은 마치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그 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꽃은 설명할 것이 많다.

 꽃잎도 있고 잎새도 있고 줄기도 있고 가시도 있고 거기다 색깔도 있고 향기까지 있다.

 여기에 비해서 스타치올리의 작품은 사뭇 다르다.

 밋밋 일변도의 추상조각이기 때문이다.

 월미 양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다른 소리를 하나 해야겠다

. 뭐냐 하면 설명하기조차 힘들게 생겨 먹었고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거대하기만 한 이 작품을 일찌감치 무지막지한 경비를 들여서

 손수 매입해 버린 어느 사나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살아있는 작가와 함께 호흡하는 컬렉션

 

 

 

 

 

 

일신방직의 김영호 회장(1944∼)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매우 기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프랫 인스티튜트라는,

말하자면 종합예술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98년 백남준 씨가 프랫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것도 모교의 재단이사를 맡고 있는

 김회장의 추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알고 있겠지만 건축은 미술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들이기도 하다.

건축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이력 때문에도 그러하거니와

김영호 회장은 자신의 회사 건물을 거의 미술 전시장으로 꾸몄다.

직접 가 보니 회사 건물 안에 작품들이 소문보다 훨씬 풍요하게 널려 있다.

회사 앞에 떡 버티고 서서 우리를 압도하는 스타치올리의 작품을 필두로 해서,

현관 입구는 물론이고, 복도 구석구석에 작품들이 숨쉬고 있는데,

특히 9층에서 10층까지는 마치 미술관처럼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가의 작품에서 한창 작품 활동에 열심인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어깨를 견주고 있다.

한곳에서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작품을 수집한 컬렉터가 궁금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 무슨 원칙으로 작품을 수집할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손수 모든 것을 결정하는 타입이란다.

국내 작품은 물론이고 외국 작품도 반드시 눈으로 확인하고,

 그 가치를 평가한 다음 구입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선 바쁜 시간을 쪼개 발품을 팔아야 하고,

외국의 이름난 경매 현장에도 직접 찾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마다 더욱 애정을 쏟게 되며, 작품에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매우 투명하고 공개된 방식으로 작품을 구입하고 또 서슴없이 공개하는 그를 보자니

참된 컬렉터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환해진다.

 그가 오래 전에 세운 원칙 중의 하나는 가능하면 생존 작가의 작품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묻자 그는 실로 간단히 대답했다.

 살아 있는 작가들 중에 어려운 환경 속에서 예술에 목숨을 건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되물으며,

자신은 죽은 사람의 작품에 감동하기보다는 현재 살아 있는 작가와 호흡을 같이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래서인가.

그는 최근까지 여러 미술대학의 졸업미전을 직접 찾아다니며 재능 있는 신인을 발굴해 뒷바라지해왔다.

 이처럼 기업이나 개인이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을 메세나(mecenat)라고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예술가들을 돕는 것이다.

 그 어원은 로마제국의 정치가로 문화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던 마이케나스(Caius Maecenas)에서 유래한다.

메세나의 대표적인 예는 이탈리아의 메디치(Medici)가(家)다.

 메디치가는 장사로 번 엄청난 돈과 권력으로 고촐리(Benozzo Gozzoli), 도나텔로(Donatello),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라파엘(Raphael) 등을 후원하며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메디치가가 대단한 것은 단순히 자선이나 과시욕 때문이 아니라

 진심 어린 열정으로 문화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오늘날은 필립모리스, 카르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IBM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에 적극적이다.

이윤추구를 절대선으로 추앙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기업이 생산성 떨어지는 그 분야에 투자하겠는가.

기업으로서는 이익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명분에 맞아떨어지고,

기업이미지가 제고되어 마케팅과도 연결되는, 말하자면 ‘사업’의 일종인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1994년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만들어져 일신방직을 비롯해 150여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IMF위기를 맞이하면서 기업의 문화지원활동은 최우선 감축대상이 되었지만,

 김영호 회장은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속 해오고 있다.

 

 

 

 

 

 

 

 

 

 

 

그런 식으로 꼼꼼하게 컬렉션한 것이 장난이 아니게 그냥 취미가 아니게 불어난 것이다.

 이젠 본인의 입으로도 헤아리기 힘들 만큼 작품이 쌓였다.

우리는 외국 작가의 이름만 들어도 그냥 입이 벌어진다.

장 뒤비페(Jean Dubuffet)·장-미셀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도널드 저드(Donald Judd)·

안토니 카로(An- thony Caro)·솔 르윗(Sol LeWitt)·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앤디 워홀(Andy Warhol)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재스퍼 존스(Jasper Johns)·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등등 그리고 스타치올리가 있다.

김영호 회장이 우리의 주인공 스타치올리의 작품을 구입하게 된 과정을 보자.

그의 취향과 안목 그리고 뚝심이 빛을 발한다.

1988년 올림픽에 맞추어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스타치올리의 작품 〈88서울올림픽〉을 보고 맘에

들어한 그는 우선 작가에 관한 공부부터 했다.

 

 

 

 

 

 

 

 

 

 

그의 작품세계와 이력 등을 꼼꼼하게 검토한 후 작가를 초청해 수차례 회합을 했고,

그 결과 작품 〈일신여의도 ’91〉을 세웠다.

건축물에 구색을 갖춰 끼워 놓은 작품이 아니란 얘기다.

건축물과 조형물은 어우러지며 상생하는 관계다.

 이 작품이 1991년 여의도에 세워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찬탄과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김회장의 뚝심이고, 구상 위주의 조형물 속에 추상 조형물을 세운 안목이다.

 그 삭막한 빌딩숲 사이에 이런 추상물을 던져 놓는 일은 진짜로 아무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타치올리의 철학과 예술혼을 이해하고 개인적으로 어프로치해서 여의도 한 구석에

그야말로 보란 듯이 작품을 세워 놨으니 이 얼마나 통쾌한 거사(!)인가 말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군말을 늘어놔선 안 된다.

 이젠 월미 양의 암팡진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건축물과 상생하는 조형물, 〈일신여의도 ’91〉

 

 

 

 

 

 

 

나는 월미 양이 스타치올리의 작품 같은 것은 어떻게 봐야 옳으냐고 넌지시 물었을 때 얼결에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딱 한방 날리는 거지.

 다시 말해서 시원스럽게 일격을 가하는 거야.

 한방 팍 갈겨서 앗! 이게 뭐지? 하면서 구상이냐 추상이냐 구분조차 못 하게 상대를 때려눕히는 거지.

” 겨우 이런 식이었다.

 이 정도 설명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추상미술은 자고로 설명하는 사람 모두가 공교롭게도 추상 일변도로 설명한다.

자! 여기 모범답안을 하나 제시하겠다.

“추상미술을 향한 인간의 감정이입은 그 양식의 발전을 단순히 형식적 맥락에서 파악해선 안 되며,

그 속에 내재하는 예술의욕과 세계관으로부터 그 근거를 찾아내야 한다.

즉 인간과 외계현상 사이의 행복한 범신론적 친화관계가 이루어질 때

 감정이입 충동이 나타나며 외계현상에 의해 야기되는 인간의 내적 불안이 추상 충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 《추상과 감정이입》,

1908)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모범답안 중 하나다.

 이런 답변의 문제점은 제대로 알아먹기가 너무도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검토해 봐도 마찬가지다.

 

 

 

 

 

 

 

 

 

 외계현상에 의해서 야기되는 인간의 내적 불안이 추상 충동을 불러일으킨다니,

 빌어먹을 그게 무슨 의미인가 말이다.

내가 짐작하기에도 오늘날 추상미술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가장 심각한 딜레마다.

 설명을 딱 부러지게 해 낼 수 없음이 아킬레스건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참으로 희한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빛을 발한다.

즉 추상예술은 그것에 대한 설명이 미궁이면 미궁일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견고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럼 스타치올리의 작품은 얼마나 미궁이냐,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면 실제로 스타치올리 자신도 장황 일변도로 나간다.

나는 월미 양이 미리 제시한 자료들을 다시 검토해 봤다.

그토록 단순해 보이는 조형물을 만들어 낸 사람답지 않게 그는 작품으로 전쟁을 논하는 인류학자였고,

 정치적 유대관계를 중요시하는 정치학자였으며,

사유 방식이나 구성된 개념(constructed idea)이나 지적인 궤적(intelligent trace)을 옹호하는 철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자기 변론은 장황하게 느껴질 만큼 세밀했다.

이 점은 백남준을 제외한 우리 쪽 작가들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스타치올리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말을 잘 들어보면 차라리

우리가 지금 고민하는 ‘추상미술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의 문제는 쉽게 풀린다.

 

 

 

 

 

 

 

 

 

 

 

 


“추상미술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나는 일신방직 건물 앞에 놓여 있는 작품을 보며 옆에 있던

 월미 양에게 즉흥적이며 체험적인 상상력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거대하게 휘어진 칼을 닮았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자료를 통해서 본 작가 자신의 발상은 훨씬 간단명료했다

. 자기의 딸아이가 아빠를 반길 때 활짝 펼쳐 드는 양팔 형상이 작품 구성의 출발점이었다.

딸아이가 치켜든 양팔 형상은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어린 딸아이가 숙녀로 변해 가듯 성숙하게 익어 간다.

똑같은 얘기다.

 작가의 사유도 자연스럽게 성숙해진다는 얘기다.

한껏 치켜든 딸아이의 양팔 형상이 어떤 모양으로 성숙해졌는지를 직접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식이다.

“우리의 삶에 대한 불확실한 느낌을 일으키는 위태로운 균형(suspended balance)이 내 작품의 포인트다.”

이쯤에서 내가 월미 양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추상미술이라고 해서

그것의 원리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작품 앞에서 그냥 그 순간에 보고 느낀 것이 곧 추상미술의 개념이 될 수 있다.

‘와! 휘어진 칼이 엄청나게 거대하군’과‘저거 초승달이 땅에 내려와 앉은 거 아냐’,‘저거 손톱달 아냐?’,

‘길게 썬 수박 같은데!’ 이런 식으로 보면 합격이라는 것이다.

이런 건 모두가 작가 딸아이의 활짝 벌린 양팔과 동일한 맥락에 놓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공부를 하다 보면 작가가 개발(?)한 이론대로 아슬아슬함의 극치,

 불균형의 긴장감, 작은 것을 확대했을 때의 충격파, 칼 끝을 연상시키는 창조적인 자극, 쇼킹한 눈요기,

 심지어 태극기에 그려져 있는 태극의 선, 그 선이 부여하는 고요함을 수반한 일종의 열정 등등으로.

추상예술·추상회화·추상조각을 자꾸만 따지고 들자면

우리는 정감록이나 구약의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빅뱅설이나 창세기의 학설도 내가 말하는 딱 한방 단 일격 철학에 동의한다.

신(神)은 단 한 큐에 천지를 창조했다.

 전례도 없고 샘플도 없이 최초로 제작한 것이므로 그것은 엄연한 추상작품이었다.

 왜냐하면 신이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며 ‘흠! 좋은데’라는 탄성과 함께 자뻑(스스로 뻑이 감)까지 했기 때문이다.

 

 

 

 

 

 

 

 

 

 

이젠 슬슬 정리할 수가 있다.

월미 양이 나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우리는 신(神)의 자격을 가졌다.

보고 나서 ‘흠! 좋은데’ 아니면 ‘흠! 저런 건 나도 할 수 있겠다’

 그것으로 족하다.

이게 조영남식 정답이다.

 현대로 갈수록 그리고 추상으로 갈수록 매사는 단 한방의 철학,

 단 일격의 철학으로 집약되는 경향을 보인다.

오사마 빈 라덴의 비행기가 단 한방에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날려 버렸을 때,

모든 인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와! 기가 막힌데’

아니면 좀더 우아하게 ‘와! 예술인데’로 마감해버렸다.

추상미술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 단 한방의 전후좌우 사정까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스타치올리의 대표작 앞에서 월미 양이 나한테 “저걸 어떻게 봐야 해요?”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등 뒤에선 사실 식은 땀이 흘렀다.

그건 마치 음악이라곤 조영남의 〈화개장터〉 밖에 모르는 여자가 어디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 들려오자

“조씨 아저씨! 저 음악은 어떻게 들어야 해요?”

하는 질문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바흐의 음악은 굉장히 어렵다.

일정 부분의 공부가 없이는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미술의 기초 공부도 없는 내가 월미 양한테 내놓은 대답은 겨우 단 한방의 미술 일격의 미학이었다.

 그런데 너무 허술하다.

 공부가 모자란 탓이다.

 

 

 

 

 

공부가 모자라면 남는건 고생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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